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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된 RE-View(Album) - 김태균 - 녹색이념(Green Id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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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8 23:52:59


이것은 진정 인간의 손길이 역력한 사연과 사색의 결과물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품은 이의 자기이념.. 그것은 극대화된 추상과 극소화된 난잡함의 화학 작용이 빚어낸 본작 [녹색이념]이란 실체로 드러나 있다. 테이크원(TakeOne)이라는 이름을 잠시 걷어둔 채, 김태균이라는 이름으로 그가 본작을 발표한 이유는 매우 명확하다. 누누이 그가 랩을 통해 전하곤 했던 떳떳함의 무게를 완고히 다지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필자는 지난 20155월 김태균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TakeOne For The Team]이라는 작품을 소개하며 본작에 대한 막심한 기대를 드러낸 바 있다. 그러나 막상 본작의 전체적 구도(고체가 아닌 액체 상태에 가까운)를 파악하고 보니, 맹목적 상태에 가까웠던 그 기대는 본작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 오랜 시간을 공들여 만든 작품은 비로소 다른 시선에게 비추어졌을 때 일말의 허무를 남기기도 한다. 랩퍼 김태균의 녹색이념 역시 그런 허무에 비춰진 구름과 같다. 그가 구축한 이념은 그가 가진 소신과 사색, 일상, 그리고 의식의 흐름에 따른 공간적 서술 등의 형태가 섞인 그만의 유일한 세계이다. 그 세계는 확장되기도 하다가, 또 움츠러들기도 한다. 김태균은 본작의 곡명이 표상하는 것들을 통해 구축된 자기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가감 없이 펼쳐낸다.

 

추측하건대, 김태균이 본작으로 하여금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는 일련의 갈음 과정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흔히 이야기를 담은 랩 앨범에서 운운되곤 하는 서사라는 표현을 떠올려볼 때, 이것은 대단히 치열한 강박이다. 뜻한 바의 소신을 위해 계속해서 전달할 이야기를 쓰고 지웠던 김태균의 작가주의적 면모가 시야에 선하게 그려진다. 본작이 담고 있는 김태균의 직관적인 표현은 주로 본작의 전반부(트리플 타이틀 중 첫 곡에 해당하는 막다른 길에 이르는, 그러니까 두 번째 인터루드(Interlude)잔상이전까지)에 점철되어 있다. 그것은 명확한 어법과 나른한 듯 하지만 실은 유연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의 가사로 가득한 것들이다. 그리고 잔상을 경유하여 도달한 후반부(세 번째 타이틀인 제자리와 마지막 트랙인 암전을 제외한)에서는 관계를 맺는 이성과 결부된 감정선, 사물 등이 그야말로 쪼개진 드라마의 장면들이 펼쳐진다. 본작을 지은 김태균의 이념(한 개인의 세계가 생성시킨 가치관)은 철저할 정도로 탄탄하지만, 음악적인 울림은 그 이념을 쪼갠 조각들을 모두 포용할 수 있을만큼 여러모로 다채로운 프로덕션으로 수렴된다.

 

어찌 보면 첫 믹스테잎을 이야기할 적 본작에 대한 필자의 추측이 일정 부분 들어맞은 부분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때 필자는 녹색 이념의 모티프는 테이크원(김태균) 스스로의 자아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는 말을 담은 바 있는데, 이 자아가 한 개의 개막과 한 개의 막간의 종교적인 무드로써 두 개의 성서에 쓰여진 표현으로 대변되어 있다. 디모데전서 67절에서 12절에 이르는 개막적 트랙 섬광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자본이 세상을 굴리는 와중에도, 구축(구원이라고도 쓸 수 있을)을 위한 빛을 떳떳하게 놓지 않겠다는 김태균의 의지적 함의를 적절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전반과 후반의 막간인 잔상은 더 구체적인 진리를 찾는, 고행하는 순례자의 뒷모습을 극적으로 연출한다. 야고보서 112절에서 18절에 이르는 그 구원의 서사는 나그네와 같은 존재 김태균의 모습을 뒷받침한다.

 

이렇게 두 장의 가라사대 사이에 놓여 있는 예술가(랩퍼)를 갈망했던 김태균과 애정의 관념과 일상의 풍경 속에서 무의식적 머무름과 방황을 반복하는 김태균.. 그 두 존재의 이중 서사가 막힘 없이 채워져 있는 것은 특히나 주목할 부분이다. 그 뿌리가 되는 시간적 배경이 붉은 융단이 대한민국의 지상을 쩌렁쩌렁 흔들었던 2002년 여름인 점은 흥미롭다. 그러나 이것은 김태균 본인에게는 필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2002년 여름을 들끓였던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꿈은 이루어진다가 아니었던가. 10대의 나날을 사는 초등학생이 생각했던 꿈에 대한 생각들(현실 속에 처참하게 뭉개진 회의적인 생각의 파편들이 그 중심을 이룬다)과 그 생각들이 연출하는 모습으로부터 탈피하여 진실된 삶의 철학으로부터 구원받기를 바라는 현 시점에서의 김태균의 마음이 오롯이 드러난 것이다. ‘붉은 융단에서 그가 역사의 장을 빌어 굴레의 발자취를 차분히 더듬어가듯, 그 경로를 미니멀한 드럼과 구원의 합창, 깊은 피아노 루프와 그 사운드에 착 달라붙는 비트 등의 프로덕션으로 받쳐주는 듀플렉스 지(Duplex G)의 모습도 든든하다.

 

사연은 계속해서 전해진다. 그러나 그 사연을 천천히 해부하고, 톺아봄과 동시에 그 모든 발자취들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시의적절하게 싣는 김태균의 가사적 선택은 실로 본작에 있어 운명적인 이념적 색채를 만든다. 경우에 따라서 격앙되기도 하는 그의 운율에는 좌절을 금기시하는 MC의 독이 서려 있기도 하다.(끄트머리에 자리한 암전이라는 문제적 트랙에 그 모든 농도가 짙게 배어 있다.) 브라더수(BrotherSu)와 테일러(Taylor)의 감칠맛 나는 신스 사운드가 몽롱하게 몽중(夢中) 김태균의 앞날에 대한 포부와 다짐을 쪼개놓는 보여줄 때’, 실력파 랩퍼라 여겨지는 이들(더블 케이(Double K), MC 스나이퍼(MC Sniper), MC 메타(MC Meta), 로꼬(LOCO))을 명품 조연으로 출연시킨 뒤, 그들과 자본과 타협점이 지나치게 선명한 방송과 이 바닥의 구조에 대한 대화를 늘어놓듯 랩과 코러스의 향연을 수놓는 이 주는 시사점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그것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대마초에서 조금 더 심화된 김태균의 플로우와 가사들로 꽉꽉 전해진다. 비다 로카(Vida Loca)를 주축으로, 다소 전위적인 느낌을 연출하는 프로듀서 디클랫(DCLAT), 듀플렉스 지 등이 빚어낸 정적인 느낌의 멜로디 라인과 겹쳐진 붐뱁 사운드를 김태균의 알맹이 꽉 찬 랩과 어글리 덕(Ugly Duck), 릴 보이(Lil Boi) 등의 훅(Hook)이 채우고 있다. 사운드가 통통 튀는 트랩(Trap)과 신비감을 주는 보컬로 극적 전환을 이루고서 종결되는 부분은 본작의 백미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김태균의 매끄러운 플로우와 엘로(Elo)의 부드러운 보컬이 그레이(Gray)의 장조 프로덕션 위에서 인상을 남기는 막다른 길을 경유하여 본작이 12장으로 들어서는 순간은 여지껏 언급했던 본작의 서사성이 가진 깊은 층위를 만끽할 수 있는 대목이다. 슬럼프와 매너리즘 속에서 방황하는 예술가의 양면적인 (씁쓸하기도 하고, 달콤하기도 한 ) 고뇌를 여과 없이 담아낸 겨울잠이라는 트랙은 특히 그렇다. 고뇌를 사탕발림하는 전자음과 푸근한 피아노 라인은 본작을 역설로 물들이기도 한다.

 

한편 12장에서 중추적인 이목을 끄는 자각몽은 시간의 경계, 타자와 사이의 경계를 지을 수 없는 꿈의 해석이다. 3절에 걸쳐 반복되는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는 희미해지는 심장과 심장의 만남과 호흡에 비례한 일련의 절차다. 3절에 다다를수록 서로에 탐닉했던 두 존재는 서로의 마음을 거느리지 못한 채 멀어진다. 보컬 스텔라 장(Stella Jang)3절 이전의 브릿지(Bridge), 김태균의 가사도 모두 그것을 대변하고 있다. 그러고서는 끝끝내 상대방을 저주하고 만다. 이미 풀어져버린 선택지를 피할 수 없다면 그것을 온몸으로 각인해내고 마는 자각몽속 화자의 모습.. 그것을 어떻게 느끼느냐는 이 연출된 꿈에 개입할 수 있는 청자의 몫일 터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닌, 꿈 속 공간인 하나로 해석될 수도 있을 침대라는 곡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매우 깊게 느껴진다. 꿈이라는 커다란 프레임 속에 또 다른 프레임은 침대라는 사물로, 그곳에서 또 다른 무드의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그것은 시간을 거스르는 과정이었을 지도 모른다. 자각몽에서 펼쳐졌던 화자와 타자의 관계가 돈다발로 가득한 침대라는 공간을 둘러싸고 첫 만남의 시기로 되새겨지는 장면은, 본작의 12장의 중심을 이루는 애증의 서사를 매우 각별하게 반증하고 있다. 흔히 이걸 두고 역순행적 구성이라고 했던가. 각 곡의 노랫말 속에 담긴 소리를 함께 담고 있는 프로덕션은 더 심화된 나른함을 선사한다. 이렇게 거슬러진 시간은 적어도 꿈 속에서라면, 유예된 시간이 되기도 한다. 결국 딱 그만큼 관계는 지속되고, 꿈은 깨어지고 만다. 그리고 그것을 이야기하는 화자에게 있어 이것은 타의에 의해 해몽된 것이 아닌, 스스로 자각된 꿈으로 남게되는 것이다.

 

 

상술하였듯, 이렇게 커다란 틀로 이루어진 서사를 몇 번씩 되풀이하고 난 뒤 남게되는 건 허무함이다. 자각된 12장의 꿈을 뒤로 하고 일상으로 회귀하는 김태균의 감정이 얼마간 헛헛함을 풍기는 세 번째 타이틀 제자리에 귀를 기울였을 때 그렇다. 그 감정을 모르지 않았는지, 이 곡에서는 마지막 종착지를 알리는 지하철 안에서의 소리가 삽입되어 있다. 그렇게 끝난 줄로만 알았던 본작에서 김태균은 암전이라는 (본작의 서사적 구도상) 번외에 가까운, 그러나 앞선 트랙들보다 매우 사상적인 성격이 뚜렷한 곡을 통해 빛과 어둠을 가로지르는 이념적 첨단의 상태를 피력한다. 주춧돌을 이루는 건 당연히 그가 받은 영감의 자취와 철학적 문장들이다. 매우 저돌적임과 동시에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그간 여러 문장들을 고쳐썼을 김태균의 이념적 편력이 돋보이는 경이로운 갈무리라고 할 수 있겠다. 본작의 프로덕션에 역시 일정 부분 일조한 제이 키드먼(Jay Kidman)의 기괴하고 텅 빈 프로덕션이 점차 둔중한 트랩으로 확장되는 대목도 청각적인 인상을 각인시킨다.

 

 

필시 이것은 창작 과정에서 허물어지고 또 다시 세워진, ‘구축된 김태균 고유의 영역으로 남을 작품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청자가 특별히 주목해야할 것은 본작의 개별 곡을 통해 느낄 취향(기술적인 측면으로 말미암은)이 아닌, 종교적인 장막의 구분 아래 완전하게 채워진 본작의 서사성이다. 김태균은 괄시와 조롱,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견고하게 자신의 떳떳함을 이념으로서 증명하였다. [녹색이념]은 김태균의 자아 편력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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