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도 LP로 음악 듣는 사람 있어? 그런 구닥다리를…." 지산밸리록페스티벌과 에릭 클랩튼, 마룬5의 내한공연 등 굵직굵직한 대형 콘서트를 성사시키며 잘나가던 공연기획자 이길용(40)씨가 지난해 LP 공장을 세운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는 축하보다 우려를 했다. 주류 음반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 지 20년은 되는 LP를 만들려고 공장까지 짓는 건 누가 봐도 시대착오적이었기 때문이다.
세시봉 출신 가수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1990년대 가요가 인기를 끄는 '복고 열풍'에 편승하겠다는 걸까. 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새로운 개념의 음악 상품으로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영국 록밴드 콜드플레이의 신보처럼 아이돌 그룹의 앨범을 고급스런 아트워크와 패키지로 꾸며서 국내와 해외에 판매하는 거죠. 10, 20대에겐 LP가 새로운 의미의 상품이 될 겁니다. 장당 제작 단가가 2만원이 넘는 일본보다 싸게 만든다면 승산이 있을 거라 봅니다. 정식 가동 전인데 벌써 지분투자나 인수 문의를 해오는 곳도 있습니다."
지난해 가을 전세 보증금 등 사재를 털어 경기 김포시에 공장을 세웠다. 해외 뮤지션 공연을 진행하다 알음알음 연락이 닿은 벨기에 LP 공장 '비닐리움'으로부터 프레싱 기계 4대를 들여와 9일 테스트 제작을 한다.
아이돌 음반도 LP로
가요계에 LP 바람이 불고 있다. 2AM은 아이돌 그룹 중 처음으로 5월 15일 LP를 발매한다. 지난달 CD로 발매한 미니앨범 '피츠제럴드식 사랑이야기'를 미국에서 LP로 제작해 들여와 판매하는 것이다. 수량은 1,000장에 CD보다 3배 가까이 비싼 4만원 내외. 2AM의 LP 발매는 30대 이상 마니아층에만 소비됐던 LP의 수요를 10, 20대로 넓힌다는 데 의미가 있다. 2AM이 소속된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최유정 부사장은 "2AM 팬들에게 아날로그로 음악을 들려주고 싶었다"며 "제작 단가가 비싸 수익성은 없지만 10~20대 팬들의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SM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등 국내 대표 가요 기획사들도 LP 발매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상품 가치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길용 대표는 "SM이나 YG도 LP 발매에 긍정적이어서 테스트 제품이 나오면 발매 문제를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아이돌 가수의 LP 발매에 앞서 패티김 은퇴 기념 앨범을 2AM LP가 발매되는 날 내놓는다. SM의 한 관계자는 "주류 음반 시장에서 LP의 가능성은 충분하다"며 상업적인 성공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10만원 넘어도 첫날 매진
국내에서 마지막 LP가 생산된 것은 2004년. 인디레이블 비트볼이 발매한 팝 음반 '캔터베리 뮤직 페스티벌'이다. 이 LP를 제작한 서라벌레코드는 그 해 문을 닫았다. 이후 브라운 아이드 소울, 장기하와 얼굴들의 신보나 신중현, 김정미 등의 과거 앨범들이 소량의 LP로 발매됐는데, 모두 미국이나 일본에서 만들어 들여 온 것들이었다. 700장 제작돼 371장만 일반에 판매된 브라운 아이드 소울 3집은 10만원이 넘는 가격에도 발매 첫 날 매진됐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데뷔 앨범 역시 600장 한정으로 발매돼 모두 팔렸다.
신중현, 김정미 등의 LP를 발매한 손병문 리듬온 대표는 "20대의 LP 구매 비율이 높아졌다"며 "장기하와 얼굴들의 1집 LP가 금세 매진되는 것을 보고 무척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교보문고의 지난해 LP 판매량은 2,000여장으로 CD 판매량의 1%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매년 증가 추세다. 교보문고 온라인사업팀 강현승씨는 "국내에서 LP를 제작해 가격을 낮추고 아이돌 가수의 LP 발매가 늘어난다면 20, 30대 소비가 크게 늘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디지털 음원의 기세에 눌려 CD 판매는 매년 줄지만 LP 소비는 꾸준히 늘고 구매층도 젊어지고 있다. 미국 음반판매량 조사 회사 닐슨사운드스캔이 발표한 '2011년 미국 음악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내 LP 판매량은 390만장. 1위는 3년 연속 비틀스 앨범 '애비 로드'(1969년)가 차지했지만 플릿 폭시스, 본 이베어, 라디오헤드 등 젊은층이 즐겨 듣는 록밴드의 앨범도 상위권에 들었다. U2, 핑크 플로이드, 너바나 등 전설적인 밴드들의 베스트셀러 앨범들이 호화 패키지의 LP로 다시 발매되는 일도 흔하다. LP를 시장에서 몰아낸 CD의 판매량은 매년 감소하지만 LP 소비는 2010년 14%(전년대비 증가율)에서 지난해 36%로 늘며 당당히 음반시장에 컴백하고 있다.